가을이 묻어 왔습니다
길가에 차례없이 어우러진 풀잎들 위에
새벽녘에 몰래 내린 이슬따라 가을이 묻어 왔습니다.
뒤척이다 뒤척이다 겨우 잠들 수 있었던
짧은 여름밤의 못다한 이야기가 저리도 많은데...
아침이면 창문을 닫고 홑이물 둘둘 말아야 하는
선선한 바람따라 작년의 가을이 묻어 왔습니다.
눈을 감아도 눈을 떠도 숨이 막히던 더위와
세상의 끝날 이라도 될 것 같던
그리도 쉼 없이 퍼붓던 소나기에
다시는 가을 같은 것은 없을 줄 알았는데...
밤인 줄도 모르고 처량하게 울어대는
가로수의 매미소리 따라 가을이 묻어 왔습니다.
상큼하게 높아진 하늘 따라 가을이 묻어 왔습니다.
이왕 묻어온 가을이라면
촛불 밝히고 밤새 읽을 한 권의 책과
눈빛으로 마주해도 마음 읽어낼 그리운 이와
열무김치에 빠알간 고추장에 깨소금 참기름 듬뿍넣어
노오란 양푼바닥 박박 긁어 마지막 한 입까지 아쉬워하며
걸쭉한 탁배기 한 사발에 된장으로 듬뿍 치장한 풋고추 한 입에
목젖이 보이도록 걸걸한 함박웃음이 있어 더욱 행복하고
그리운 사람이 함께 있어 더욱 가슴조이는 가을이면 좋겠습니다.